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리는데, 고도의 수읽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정치와 많이 닮았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 흔하게 바둑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 "바둑이 없었더라면 정치 기사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특히 고도의 수싸움과 전략전술이 필요한 대선 구도는 바둑의 세계와 비슷한 면이 많다. 3월에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최근 정치 뉴스에 [정치개혁안 마련 초읽기, 장고 끝의 악수다, 정치적 무리수였다, 악수일까 묘수일까, 총선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등 바둑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자주 보인다.
더불어 프로기사들의 기풍과 대선주자들을 빗대어 설명하는 기사들도 있다.
이재명 후보를 서봉수나 이세돌의 맹공형 기풍으로, 윤석열 후보를 이창호의 뚝심형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안철수 후보를 우주류(宇宙流)의 다케미야 마사키와 극실리주의 고바야시 고이치의 기풍을 합친 것이라고 딴지일보에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대선주자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모두 바둑과 관련이 있다.
바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대선주자들의 기력에 대해서 알아본다.
▲'맹공형 기풍' 이재명 후보. [사진: 재명이네 자료창고 홈페이지]
#이재명 후보 ‘수준급 실력 자랑’
이재명 후보의 바둑 실력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형편이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이 후보는 어릴 때 바둑알이 없어서 고무신을 잘라서 대국을 했을 정도로 바둑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때부터 바둑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승부와 전략 측면에서 정치와 바둑이 닮았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1급 정도 된다’고 밝혔는데 캠프 소속 측근은 “이 지사는 바둑실력이 수준급으로 판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포석을 두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과거에는 스트레스 받을 때 바둑을 많이 뒀는데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고 하며, 최근에는 바쁜 일정으로 대국을 하지는 못하는데 이동할 때 TV로 시청한다.
무사독학으로 유학파 기사들을 이겼던 서봉수 선수를 좋아했는데, 이세돌 선수 팬이라고도 밝힌 바 있으며 바둑에 애정이 있어서인지 바둑계 행사에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농심신라면배 한국 우승 축하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 캡처]
2020년 바둑전용경기장 건립 협약식에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바둑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이자 스포츠라”는 표현을 한 바 있고, 21년 11월 바둑의날 기념식에도 이 후보의 축전이 울려 퍼졌다.
이 밖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바둑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둑으로 치면 구성마다 한 집씩만 이기는 것이다. 계속 이기면 결국 이기지 않나. 대마를 잡고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응징을 당한다”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26일 제2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특히 최종 주자로 나선 신진서 9단이 중국과 일본 랭킹 1, 2위를 모두 격파하고 국가 대항전을 승리로 이끌어주신 것에 감사 말씀을 드린다. 최정 9단도 세계 여자 바둑계의 정상을 지키고 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뚝심형 기풍' 윤석열 후보. [사진: 윤석열의 오늘 홈페이지]
#윤석열 후보 ‘바둑명문 충암고 출신’
윤석열 후보의 바둑 인연은 고등학교부터 시작됐다. 윤 후보는 이창호, 유창혁 등 많은 프로기사들을 배출한 바둑명문 충암고 출신이다.
윤 후보 캠프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바둑기술과 바둑인생에 대해 체화됐고, 바둑을 통한 사고 전략화가 일상화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공식 석상에서 바둑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바둑 실력은 베일에 싸여있다.
#안철수 후보 ‘소문난 바둑마니아’
안철수 후보는 일찍이 바둑마니아로 소문이 나있다.
2017년에 한국기원에 방문해 프로기사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는 안 후보는 당시에 IT 전문가 경력을 살려 바둑계 최신 화두인 인공지능 바둑을 화두에 올렸고, 일본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젠'과 실제 대국을 했다.
젠과 실제로 대국하는 모습을 본 관계자는 "유단자의 행마였다"고 평했으며, 안 후보는 '지난 30년간 바둑을 두지 못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2단 정도의 기력이 된다'고 소개했다.
▲'극실리주의 기풍' 안철수 후보. [사진: 안철수 홈페이지]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 의과대학 예과 2학년 때부터 바둑을 처음 배웠는데 적성에 맞았는지 1년 만에 아마 2단까지 올랐다. 첫 길잡이가 된 입문서는 오타케(大竹英雄) 9단이 쓴 책.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월간바둑을 창간호부터 빠짐없이 모을 정도로 바둑을 좋아했으며 바둑뉴스를 챙겨 볼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바둑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당시 부산 한국기원 서면지원에 있던 이기섭 8단이 "아깝다. 어릴 때 배웠으면 조훈현 못지 않을 기재였을 것이다" 말했다고 전해진다.
▲2017년 2월 국가대표 프로기사회와 간담회를 가진 안철수 후보. 인공지능 젠과 시범 대국을 했다.
바둑마니아답게 여러 인터뷰에서 바둑을 이야기 했는데 “바둑에서 중요한 게 복기 아니겠느냐. 고수일수록 내가 어떤 수를 뒀을 때 예상한 대로 됐는지, 되지 않았는지 복기를 통해 차츰차츰 실력이 느는 법이다”, “바둑은 부분적 이익보다 전체 국면을 봐야 한다”면서 “바둑이 그러하듯 인생이나 사업도 결국은 장기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 후보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바둑에서 배운 경영원리를 언급한 바 있다.
#바둑실력이 가장 센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바둑실력이 가장 세다고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 4단 실력이다. 어릴 적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대국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고, 성년이 된 뒤에는 월간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조훈현, 서봉수 선수의 명국들을 복기했다.
‘직관적으로 두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따지는 장고형 바둑에 가깝다’는 문대통령은 2016년 바둑국가대표팀의 초청으로 ‘나의 삶, 바둑’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고, 주변의 요청으로 박정환과 초반 20여수를 두었다.
바둑과 정치의 닮은 점에 대해서 질문하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은 바둑판과 정치판에서 불변의 진리”라고 답했는데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대사를 그르치는 법이다. 정치를 할 때도 항상 소탐대실의 교훈을 명심하면서 자신을 비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한국기원에서 ‘나의 삶, 그리고 바둑’이라는 주제로 국가대표 명사초청 특강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 박정환과 초반 20여수를 뒀다.
고수들의 대국을 보면 특히 싸움을 할 때 실제 전쟁을 보는 것처럼 치열하다. 대마가 죽기도 하고, 다 죽었던 돌들이 살아나기도 한다. 또 언제 싸웠냐는 듯이 적당히 이익을 교환하는 등 타협을 한다.
‘바둑과 경영, 바둑과 인생’ 등의 저자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경쟁의 끝은 상대의 궤멸이 아니라 공존과 이익의 공유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바둑고수들처럼 좀 더 유연하고 재미있는 인생의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바둑과 인연이 있는 대선주자 3인의 바둑돌은 앞으로 어떻게 놓여지게 될까.
▲대선주자 3인(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바둑 실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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